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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마음의 표정 4. 선성만수

마음의 표정 4. 선성만수(蟬聲滿樹) : 매미 울음소리에 옛 사람을 그리네


  퇴계 선생이 주자(朱子)의 편지를 간추려 『회암서절요((晦菴書節要)』란 책을 엮었다.

  책에 실린,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답장한 편지는 서두가 이랬다. 수일 이래로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매번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자 남언경(南彦經)과 이담(李湛) 등이 퇴계에게 따져 물었다. 요점을 간추린다고 해 놓고 공부에 요긴하지도 않은 이런 표현을 왜 남겨 두었느냐고.

  퇴계가 대답했다. 생각하기 따라 다르다. 이런 표현을 통해 두 사람의 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단지 의리의 무거움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 빼면 사우(師友) 간의 도리가 이처럼 중요한 것인 줄 어찌 알겠는가. 나는 여름날 나무 그늘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자와 야백공 두 분 선생의 풍모를 그리워하곤 한다.


  의리의 무거움만 알아 깊은 정을 배제하는 데서 독선(獨善)이 싹튼다. 뼈대가 중요하지만 살이 없으면 죽은 해골이다. 살을 다 발라 뼈만 남겨 놓고 이것만 중요하다고 하면 인간의 체취가 사라진다. 명분만 붙들고 사람 사이의 살가운 마음이 없어지고 보니 세상은 제 주장만 앞세우는 살벌한 싸움터로 변한다.

  퇴계 선생의 이 말씀이 더욱 고마운 까닭이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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