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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마음의 표정 7. 허정무위

마음의 표정 7. 허정무위(虛靜無爲) : 텅 비어 고요하고 담박하게 무위하라


  이식(李植)이 아들에게 써준 편지의 한 대목이다.

  근래 고요한 중에 깊이 생각해보니, 몸을 지녀 세상을 사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천금의 재물은 흙으로 돌아가고, 삼공(三公)의 벼슬도 종놈과 한 가지다. 몸 안의 물건만 나의 소유일 뿐, 몸 밖의 갓은 머리칼조차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해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또 말했다.

  「원유부(遠遊賦)」에서는 ‘아득히 텅비어 고요하니 편안하여 즐겁고, 담박하게 무위(無爲)하자 절로 얻음이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신선이 되는 첫 단계요. 병을 물리치는 묘한 지침이다. 늘 이 구절을 외운다면 그 자리에서 도를 이룰 수가 있다.


  이의현(李宜顯)이 말했다.

  재물은 썩은 흙이요, 관직은 더러운 냄새다. 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할 것조차 못된다. 온 세상은 어지러이 온 힘을 다해 이것만을 구하니 슬퍼할 만하다. 탐욕스럽고 더러운 방법으로 갑작스레 부자가 되거나. 바쁘게 내달려 출세해서 건너뛰어 높은 자리에 오른 자는 모두 오래 못 가서 몸이 죽거나 자손이 요절하고 만다. 절대로 편안하게 이를 누리는 경우는 없다.


  조물주가 분수 밖의 복을 가볍게 주지 않음은 이와 같다. 구구하게 얻은 것으로 크게 잃은 것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이는 아주 사소한 것일 뿐인데도 보답하고 베풀어 줌이 이처럼 어김이 없다. 하물며 흉악한 짓을 멋대로 하고 독한 짓을 마구 해서 착한 사람들을 풀 베듯 하고서 스스로 통쾌하게 여기던 자라면 마침내 어찌 몰래 죽임을 당함이 없겠는가? 하늘의 이치는 신명스러워 두려워할 만하다.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할 사람이 적지 않겠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믿고 세상을 농단하던 자들의 말로는 늘 비참했다. 지금까지 제 눈으로 확인한 것만도 수없이 많았을 텐데 자신만은 예외일 것으로 믿다가 뒤늦게 땅을 친다. 아! 너무 늦었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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