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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삼지무려_재주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가?

18. 삼지무려(三紙無驢) : 재주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보다 지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보라”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길 때가 있다. 경력으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내가 할 일이 아닌데도 자구 나에게 ‘그딴 일’을 시킨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당혹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혹스러움은 가슴에 화로 쌓인다. ‘그딴 일’이란 ‘성과는 없고 신경만 쓰는 일’들이다. 부서의 각종 비용을 정산하고 사업별 비용을 관리하는 등등이 이런 일에 속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딱히 정해진 담당자는 없다. 상사의 입장에서 보면 누군든 처리하면 된다. 문제는 자꾸만 그 일이 나에게 떨어진다는 데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상사가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을 때, 두 번째는 내가 그런 일을 해도 되는 사람처럼 보일 때다. 첫 번째 경우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상사의 앙심을 풀어 주거나, 계속 허접한 일을 맡으면서 이를 갈면 된다. 나중에 복수를 해 주리라 생각하며 넓은 마음으로 계속해서 참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내가 더 큰 투자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오히려 직장생활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심각한 것은 두 번째 경우다. 이는 내가 생각하는 회사 내에서의 내 위상과 상사가 생각하는 내 위상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상사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러니 당연히 ‘그딴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의 생각이 옳은가를 따져 보아야겠지만, 그런 문제들은 나중에 따져 봐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 하는 것이다.

 

  자신을 업신여기고 하대하는 상사를 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주변의 정의로운 선배가 나서서 한마디 해 줄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의로운 선배에게 현재 자신의 사정과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봐야 근원적인 문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당신이 타인의 위상을 높여 주기 위해 그다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처럼, 타인들 역시 당신의 위상을 높여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직장생활은 괜찮은 것이었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확고하게 나의 위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는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는가?

  ‘나는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 이남훈 저, 『처신』 「3장 호구(虎口) : 입장 바꿔 생각하면 반드시 이기는 포지셔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