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시불식(不時不食) : 때가 아니면 먹지도 않듯이, 때가 아니면 말하지도 마라
“직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언의 ‘시점과 조건’이 중요하다”
많은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직언을 하는 것에 대해 ‘뜨거운 감자’로 여긴다. 역사 교과서에는 ‘왕에게 직언을 하다 죽은 충신’이 수없이 등장하고, 이 정의롭지만 불우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직언=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직장인 대부분은 ‘뭣 하러 직언 같은 것을 해서 화를 좌초하느냐’며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직언에 대한 직장인들의 이러한 생각이나 자세는 옳지 않다. 실제 현실의 직장에서 직급이 높은 상사들은 부하의 직언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언은 상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상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려 프로젝트에 지장을 주고 팀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로 몰고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모든 결과가 고스란히 당신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뭣 하러 직언을 해?’라며 멀찍이 떨어져서 먼 산 바라보듯 할 수 있겠는가?
조직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직언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제대로 먹히는 조언’, ‘상사가 반기는 조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직장생활을 하며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급 솔루션을 얻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직언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를 풀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직언 그 자체가 아니라, 직언이 효과를 발휘하는 ‘조건과 시점’이다.
직언은 조언의 일종이다. ‘도움이 되는 말’을 조언이라고 한다면, 그중에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탄없이 말함으로써 도움을 주려 하는 말’을 직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직언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과격하고 거칠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직언은 직언이 아니라 ‘지적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둘의 차이는 상대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직언에 대한 올바른 조건을 만들 수 있고, 그 적절한 시점을 판단할 수 있다면 직언은 결코 일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만은 아니다. 직언을 하는 부하는 상사로부터 ‘회사에 관심도 있고 자신에게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는 반면, 직언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면 그저 ‘일을 하는 부하’일 뿐이다. 직언을 포함한 그 모든 상사에 대한 조언은 상사를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나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상사의 브레인이 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이남훈 저, 『처신』 「1장 맥락(脈絡) : 변화는 다르게 보기에서 시작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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