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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불감회수_후회할 일은 반드시 줄여야 한다

14. 불감회수(不堪回首) : 후회할 일은 반드시 줄여야 한다

 

“담판, 그 낭만적이지만 허망한 솔루션에 대해”

 

  우리는 복잡하고 케케묵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담판’을 통해서 한순간에 결론을 내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간의 지리멸렬함, 생각해 보면 딱히 별문제도 아닌 것이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힐수록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해 버리고 싶은 욕망을 충동질 느끼게 된다.

  직장에서도 이런 일들은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상사로부터 왠지 모를 지속적인 질책이나 면박을 당하는 것, 혹은 필연인지 우연인지 모를 오해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것 등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럴 때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상사와 단둘이 자리를 마련해 그냥 속 시원하게 서로 이야기해 버리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사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인간적으로 이야기하면 먹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성공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되겠지만 사실 상사와의 담판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담판의 정서는 곧 낭만의 정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예술의 한 사조인 낭만주의는 ‘꿈이나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감성적인 정서를 중시하는 취향’을 의미한다. 담판은 바로 이러한 낭만주의에 속해 있다. 결코 짧지않은 시간 동안 쌓여 온 감정이나 오해가 순식간에 풀릴 것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낭만적인 생각이며, 상대방이 당신의 생각을 당신이 원하는 방향대로만 해석할 것이라는 것도 낭만적인 생각이다.

  담판은 자칫 자신의 성향과 스타일을 먼저 까발림으로써 약점을 드러내고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상사와의 담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적은 것은 꽤 과학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담판은 기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물론 이는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담판을 성공적으로 매듭짓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또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 즉, 포기할 것이 많을수록 얻는 것도 많다는 이야기다. 특히 일반적인 협상이 아닌 담판의 특성상, 이러한 포기와 취득은 통이 크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부하직원과 상사가 담판을 한다면 누가 더 포기할 것이 많겠는가? 당연히 상사일 수밖에 없다. 경력, 업무와 노하우, 인맥 등 모든 면에서 볼 때 상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옵션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상사의 패가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다.

 

  담판은 당신이 상사가 되었을 때, 포기할 수 있는 옵션이 많을 때, 그래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을 때 하라. 비록 지금 당장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상사라도 건방지게 당신으로부터 뭔가를 ‘테이크’하겠다고 나서는 후배를 곱게 봐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이남훈 저, 『처신』 「2장 자충수(自充手) : 최소한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