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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공부의 칼끝 9. 독서망양

공부의 칼끝 9. 독서망양(讀書亡羊) : 책에 빠져 양을 잃다


  쓰루가야 신이치의 『책을 읽고 양을 잃다』를 여러 날째 아껴 읽고 있다. 하루에 9cm 두께의 한적(漢籍)을 읽는다는 오규 소라이 등 일본과 동서양 독서광들의 책에 얽힌 사연을 다룬 에세이집이다. 벌레를 막기 위해 옛 사람들이 고서의 갈피에 묻어둔 은행잎 이야기는 향기롭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할 뿐 굳이 자손일 필요는 없다(得其人傳, 不必子孫).” 같은 잔서인이 찍힌 책 이야기는 상쾌하다.


  책 제목은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의 ‘독서망양(讀書亡羊)’에서 따왔다. 장(臧)과 곡(穀)이 양을 치다가 둘 다 양을 잃었다. 경위를 떠져 묻자 장이 실토한다. “책에 빠져있었습니다.” 곡이 대답했다. “노름을 좀 했어요.” 장자가 말한다. “한 일은 달라도 양을 잃은 것은 한 가지다.” 종의 일은 양을 지키는 것인데, 책 읽고 노름하다가 본분을 잃고 양을 놓쳤다.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다기망양(多岐亡羊)의 고사가 나온다. 기르던 양 한 마리가 없어졌다.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되어 찾으러 나섰다. 끝내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연유를 묻자. 갈림길이 하도 많아 끝까지 가볼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장 보러 가던 아내가 독서삼매에 든 남편에게 당부했다. “날이 꾸무럭한데, 혹 비가 오거든 마당에 널어둔 겉보리 좀 걷어줘요.” 그녀가 돌아왔을 때 보리는 그 사이에 소나기에 다 떠내려가고 없었다. 후한 때 고봉(高鳳)의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공부에 몰입해서 큰 학자가 되었다. ‘표맥(漂麥)’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표맥, 즉 떠내려간 보리는 학문을 향한 갸륵한 몰두를 일컫는 뜻으로 쓴다.

  공부를 하자면 양이나 겉보리의 희생쯤은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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