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칼끝 7. 찬승달초(讚勝撻楚) 칭찬이 매질보다 훨씬 더 낫다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은 아내와 자식들을 고향에 두고 서울에서 혼자 자취 생활을 했다. 그가 자식에게 보낸 24통이 문집에 실려 있다. 편지 중에 특별히 내 눈길을 끈 것은 형남(亨南)과 진남(振南) 두 아들에게 막내 홍남(興南)이의 교육을 당부한 대목이다.
45세 때인 1581년에 쓴 편지에서는 “흥남이도 공부를 권유하되 마구 힐책하지는 마라. 향학의 마음이 절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편지에서도 “흥남이는 늘 잘 보살피고 북돋워 일깨워서 저저로 배움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절대로 나무라거나 책망해서 분발함이 없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서울에서 머무느라 어린 막내에게 사랑과 훈도를 베풀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처럼 형들에게 계속 편지를 썼다. 칭찬을 통해 향학열을 분발시켜야지, 야단과 책망으로 의욕을 꺾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일관된 당부였다.
어떤 이가 자기 밭에 심군 싹이 잘 안 자라자 싹을 강제로 뽑아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는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助長) 자랑했다. 다음 날 보니 싹은 다 말라 죽어 있었다.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덮어놓고 많이 가르치고, 이것저것 배우게 하는 것은, 욕심 때문에 멀쩡한 싹을 뽑아 올려 싹을 죽이고 마는 어리석은 농부의 행동과 같다. 정색을 한 매질보다는 칭찬이, 어리석다는 야단보다는 신뢰를 담은 기쁜 낯빛을 짓는 것이 자식의 바른 성장에 훨씬 낫다는 말씀이다.
아이가 불쑥 영어 한두 마디 한다고 무슨 천재라도 난 줄 알고 영재교육이다 뭐다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부모의 칭찬과 든든한 신뢰, 그리고 환한 낯빛이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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