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형구 교수의 글

가면

<가면>

오랜 병을 앓았다

꽃 같은 이름표를 달고
이름에 걸맞은 얼굴을 만들어 쓰고
이름이 요구하는 표정을 하고
이름값만큼의 병을 앓았다

만들어 쓴 얼굴로
만들어 쓴 얼굴들과 어울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맴을 돌았다
- 유진, 「가면」 중에서

남이 바라보는 나로 살아간다는 것.
때로 형식적이고 위선으로 보여
거추장스럽다고
다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이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로 바꾸어도 되겠지요.

임원이라서, 직원이라서, 사장이라서, 여자라서……
그 많은 이름에 부응하느라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다운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남이 아닌 내 시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커다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훌훌 가면을 벗어버리는 자유로움.

그러나 삶은 가면도, 맨얼굴도 필요합니다.
둘 사이에서 균현을 잡으며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사색의 향기, 아침을 열다』, 사람의 향기_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색의 향기문화원

'전형구 교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부작침  (0) 2022.02.06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0) 2022.02.05
친근한 호칭  (0) 2022.02.03
손에 대한 예의  (0) 2022.02.02
내가 존재한다는 것  (0) 202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