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사의 독서경영 -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유창선 출판사 : 도서출판 새빛
“가우디에서 임영웅까지 인생 후반전, 예술에서 삶을 재발견하다”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평생 정치평론을 했던 저자가 인생 후반에서 문화예술에 빠지게 된 사연을 담고 있다. 저자는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정치도 철학도 아닌 처음 만난 예술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ㅖ술에 심취하게 되었다. 저자는 ‘1세대 정치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송과 언론, 그리고 SNS를 통해 정치 얘기만 하면서 살았다. 그랬던 그가 하필이면 정치의 계절에 문화예술에 대한 책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무슨 사연,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역사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기라도 한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무겁고 날선 얘기를 하며 살다보니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고 보존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저자가 예술이 주는 감흥과 행복감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병상에서였다. 생사를 가르는 뇌종양 수술을 하고 8개월 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만 했었다. 밤 9시만 되면 일제히 소등하는 병실에서 저자는 밤마다 이어폰을 꽂고는 휴대폰에 담아놓은 음악들을 들었다. 깜깜한 병실에서였지만 쇼팽의 녹턴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들을 듣다 보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더 없이 편해졌다. 50대의 나이를 떠나보내던 마지막 시간에 저자는 병실에서 예술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고마움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라는 주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타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 마일리스 그 케랑갈 원작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통해 예술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2부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영웅들”이라는 주제로 임영웅 콘서트<IM HERO TOUR 2023>,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통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3부는 “예술가들의 투혼이 낳은 성취”라는 주제로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_김환기>&뮤지컬 <라흐 헤스트>,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뮤지엄 산에서의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 리움미술관의 카텔란전 <우리(WE)>, 정작 가우디는 고생했고 피카소는 화려하게 살았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를 소개하고 있다. 4부는 “슬픔조차 아름답게 들리는 선율”이라는 주제로 베리니의 오페라극 <노르마> 서울시립교향악단 <아주 특별한 콘서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세계의 포디엄을 누비는 한국의 마에스트라들을 안내해 주고 있다. 5부는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주제로 극단 파수꾼의 연극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전무송-전현아 부녀의 연극 <더 파더>, 100념만에 무대에 올려진 연극 <의붓자식>,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시몬 베유, 아인 랜드의 삶과 철학을 통해 예술의 세계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평생 하던 정치 얘기나 하면서 살지,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문화예술 얘기를 하겠다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사실 나도 무엇을 위해서 이러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보고 듣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평생 갖고 살았던 정치나 이념 가득한 삶이 내게 결코 줄 수 없었던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예술이 이렇게 주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고들 한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예술을 접하는 데는 나이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한편의 교향곡이나 그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생각할 수 있는 깊이를 갖게 된다. - <책을 내면서_50대에 나는 그만 예술에 빠져 버렸다> 중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오펜하이머의 방황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 모른다. 파우스트의 방황은 천상의 구원을 받았지만, 오펜하이머의 방황은 버림받은 채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더욱이 우리는 핵전쟁 위협에 처한 당사자이기에 그의 방황과 실패의 서사가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_오펜하이머의 방황, 실패로 끝난 ‘악마와의 거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오펜하이머》> 중에서
신명나는 한판 축제 같은 김수철의 공연을 다녀오고 나니까 진한 여운이 이어진다. ‘별리’도 ‘천년학’도 ‘못다핀 꽃 한송이’도 너무 좋다. ‘고래사냥’도, ‘서편제’도 다시 보며 김수철의 곡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김수철이 준 자극은 그리움 같은 그 시절의 향수만은 아니다. 자기가 가려는 길을 외롭더라도 꿋꿋이 걸어가는 모습이야말로 김수철을 ‘작은 거인’이라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 <우리를 위로해주는 영웅들_작은 거인 김수철이 세운 ‘음악빌딩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중에서
장욱진의 큰 딸 장경수는 『내 아버지 장욱진』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생을 걸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작품이 많다거나 꾸준히 일기 쓰듯이 그렸다는 뜻이 아니다. 평생 붓대를 놓은 적이 없다는 당신의 말씀은 작품 수가 많다는 게 아니다. 오로지 그림만을 위해 숨 쉬고 그림에만 몰두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이 반드시 그려야 할 그림이 아니라면 그리지 않으셨다. 그림이 안 되며 고통스럽게 4년이나 그리지 못하셨지만 쉽게 여기저기 휩쓸리지 않으셨다.” - <예술가들의 투혼이 낳은 성취_“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녹여서 넣는다”;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중에서
자유를 찾는 열정은 소중하지만 결국 연주자는 연주로 평가받게 된다. 임현정은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이 숙련을 거쳐 완벽한 기량을 갖춘, 그래서 더욱 완벽하고 자유로운 연주의 경지임을 잘 알고 있다. 그 몫은 자신의 것이니, 임현정의 피아니즘은 더 높은 완성도를 향한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대개 사람에게서 열정과 자유는 양립하기 쉽지 않다. 열정이 뜨거우면 뜻을 이루는데 집착하다가 그 안에 갇혀버리게 되니 자유를 잃게 된다. 그러나 임현정의 열정은 기존의 단일한 질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니 자유로움을 찾는 길과 다르지 않다. - <슬픔조차 아름답게 들리는 선율_임현정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독주하는 이유;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중에서
김명순이 대단했던 것은 그런 세상의 멸시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의 철학‘을 지킨 작가였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은 비록 전근대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넓은 사랑을 김명순은 말하고 했다.
김명순의 글들을 읽다가 보면 그녀가 여성주의에 대해서도 이미 앞서 있는 사고를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성에게만 속박의 굴레를 씌우는 남녀 차별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말하곤 했고, 여성이 지배하는 정치와 사회를 꿈꾸기도 했다. 비록 글로만 하던 주장이었지만 김명순의 페미니스트적 사고를 발견하게 된다. -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숙명_1세대 신여성 작가 김명순, 비운의 삶과 문학; 100년만에 무대에 올려진 연극 《의붓자식》>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이 책은 저자 유창선 박사가 관람했던 공연, 영화,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들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단순한 후기를 넘어 저자가 갖고 있는 인문학적 시선 위에서 작품과 예술가들에 대한 생각을 풀은 글들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작품 이상의 인사이트를 얻게 되기를 소망한다. 작품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관람의 욕구를 부여하고, 작품을 이미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면의 더 많은 것들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예술은 우리의 심연 속에 있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던가를 꺼내서 알게 해준다. 연주를 듣다가 저절로 눈물이 나는 데는 그만한 내면의 이유가 있다. 그러니 예술은 내가 누구인가, 내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도록 해준다. 또한 예술은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어떤 감정과 삶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가를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내면의 성숙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된다.
본인의 경우 우연한 기회에 문화예술단체장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연극, 오케스트라 공연, 대중음악 공연, 뮤지컬 등 다양한 각종 공연을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에서 월 2-3회 정도 주말마다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다. 분만 아니라 코로나 시국에 자동차극장을 통해 영화도 월 1회씩 관람할 수 있었다. 또한 전시회, 축제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소통도 있었다보니 저자처럼 50대에 예술을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약 2년간의 공직 생활 중에 문화예술이 주는 감동과 행복감을 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달픈 많은 이들을 위해서도, 이제 나이도 드니 인생의 즐거움을 찾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문화예술의 문턱이 더 낮아져서 함께 향유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끝으로 최근 고통 없는 세상으로 긴 여행을 떠난 저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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