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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진창의 탄식 17. 상두보소

진창의 탄식 17. 상두보소(桑土補巢) : 뽕나무 뿌리로 허술한 둥지를 고치다


  정조 때 이덕리(李德履 1728~?)는 진도 유배지에서 상두지(桑土志)를 지었다. 상두(桑土)는 뽕나무의 뿌리다. 『시경』 「빈풍(豳風)」, 「치효(鴟鴞)」편에서 따왔다.

  하늘이 장맛비를 내리지 않았을 때 : 태천지미음우(迨天之未陰雨)

  저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출입구를 얽어두었더라면 : 철피상두(徹彼桑土), 강무편호(綱繆片戶)

  지금 너 같은 낮은 백성이 감히 나를 업신여겼겠는가? : 금녀하민(今女下民), 혹감모모(或敢侮矛).


  이덕리는 『상두지』에서 호남과 영남 지역에 자생하는 차를 국가에서 전매하여 중국 국경에 내다 팔아 여기서 생기는 막대한 이익으로 국방 시스템을 개선할 획기적이고도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아무도 차의 효용가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때였다. 밑천을 따로 들일 것도 없이 노는 노동력을 이용해 엄청난 국부를 창출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혔다. 다산이 『경제유포』, 『대동수경(大東水經)』에서 한 차례씩 초의(艸衣)가 『동다송(東茶頌)』에서 그의 『동다기(東茶記)』 한 구절을 인용했을 뿐이다.


  문제는 늘 설마와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서 생긴다. 몇 해 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뒤늦게 부리가 헐도록 띠풀을 모아 봐도 비가 줄줄 새는 둥지는 손볼 수가 없다. 대책이 세워지는 것은 늘 상황이 끝난 다음이다. 문제를 알았을 땐 너무 늦었다. 공자께서는 이 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은 도리를 아는구나. 능히 나라를 다스리게 한다면 누가 감히 그를 업신여기겠는가?”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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