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의 탄식 14. 임사주상(臨事周詳) : 일처리는 언제나 꼼꼼하고 면밀하게
1567년 명종의 환후가 심상치 않았다. 신하들이 여러 날 지키다가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다른 대신들이 자리를 비웠다. 영의정 이준경(李浚慶·1499~1572)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6월 28일, 밤중에 왕의 병세가 갑자기 위중해졌다. 이준경이 들어가 주렴 밖에 서서 왕후에게 후사를 누구에게 이을 것인지 물었다. "덕흥군의 셋째 아들 모(某)로 후사를 이으시오." 당시 입직했던 여러 재상 중에 섬돌 위로 올라온 자가 많았다. 이준경이 말했다. "소신의 귀가 어두우니 다시 하교해 주소서." 인순왕후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두 번 세 번 또박또박 말했다. 모두가 분명히 들은 것을 확인한 뒤에 한림 윤탁연(尹卓然)에게 전교를 받아적게 했다. 윤탁연이 '제삼자(第三子)'라 적지 않고 '제삼자(第參子)'로 썼다. 이준경이 말했다. "이 사람이 누구의 아들인고?" 그의 노숙함을 칭찬한 말이었다.
후사 문제는 자칫 국가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중대사였다. 일점의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모두가 분명히 들어 한 점 의혹이 없은 뒤에 시행한 이준경이나, 삼(三)을 삼(參)으로 써서 혹 있을지 모를 변조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윤탁연의 침착함이 위기의 순간에 빛났다.
임사주상(臨事周詳), 일에 임해서는 그 처리 과정이 주밀하고 꼼꼼해야 한다. 다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의 불길은 한번 치솟으면 걷잡을 수가 없다. 처음의 일 처리가 야무지지 못해 없어도 될 의혹이 생기고, 평지풍파가 일어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천안함 사태의 처리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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