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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마음의 표정 12. 지지지지

마음의 표정 12. 지지지지(知止止止) :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


  지지지지(知止止止)는 그침을 알아 그칠 데 그친다는 말이다. 지지(知止)는 노자의 '도덕경' 44장에 나온다. "족함 알면 욕 되잖코, 그침 알면 위태롭지 않다. 오래갈 수가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32장에는 "처음 만들어지면 이름이 있다. 이름이 나면 그칠 줄 알아야 한다.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所以不殆)"라고 했다.


  고려 때 이규보는 자신의 당호를 지지헌(止止軒)으로 지었다. 지지(止止)는 '주역' 간괘(艮卦) 초일(初一)에서 "그칠 곳에 그치니 안이 밝아 허물이 없다(止于止, 內明無咎)"고 한 데서 나왔다. 이규보는 "지지라는 말은 그칠 곳을 알아 그치는 것이다. 그치지 말아야 할 데서 그치면 지지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또 말한다. 범이나 이무기는 산속이나 굴속에 있어야 지지다. 범이 산속에 안 있고 도심에 출몰하면 사람들은 재앙으로 여겨 이를 해친다. 엊그제도 도심에 뛰어든 멧돼지가 총에 맞아 죽었다.


  늘 '이번만', '한 번만', '나만은'이 문제다. 이미 도를 넘었는데 여태 아무 일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방심하다가 큰 코를 다친다. 그침을 아는 지지(知止)도 중요하지만, 이를 즉각 실행에 옮기는 지지(止止)가 더 중요하다. 그칠 수 있을 때 그쳐야지, 나중에는 그치고 싶어도 그칠 수가 없다. 그쳐서는 안 될 때 그쳐도 안 된다.


  사람은 자리를 잘 가려야 한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지지(止止)다. 떠나야 할 자리에 주저 물러앉아 있으면 결국 추하게 쫓겨난다. 그런데 그 분간이 참 어렵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이 분간을 잘 세우기 위해서다.

  있어야 할 자리, 나만의 자리는 어딘가? 지금 선 이 자리는 제자리인가?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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