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칼끝 23. 일자지사(一字之師) : 한 글자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생긴다
조선 중기의 시인 이민구(李敏求; 1589~1670)의 금강산 시 두 구절은 이렇다.
천길 벼랑 말 세우니 몸이 너무 피곤해(千崖駐馬身全倦,) 나무에 시 쓰려도 들자가 되질 않네(老樹題詩字未成).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이 시를 읽더니. 대뜸 ‘자미성(字未成)’을 ‘자반성(字半成)’으로 고쳤다. 처음 것은 아예 글자가 써지질 않는다고 한 것인데, 나중 것은 글자를 반쯤 쓰고 나니 너무 지쳐 채워 쓸 기력조차 없다고 말한 것이다. 한 글자를 고쳤을 뿐이나 작품의 정채가 확 살아났다.
고려 최고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연루되어 김부식(金富軾1075~1151)에게 죽었다. 생전에 둘은 라이벌로 유명했다. 김부식이 어느 봄날 시를 지었다.
버들 빛은 천 개 실이 온통 푸르고(柳色千絲綠), 복사꽃은 만 점이나 붉게 피었네(桃花萬點紅).
득의의 구절을 얻어 흐뭇해하는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후려 갈겼다.
천사(千絲)와 만점(萬點)이라니, 누가 세어 보았더냐? ‘버들 빛은 실실이 온통 푸르고(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게 피었네(桃花點點紅)’라고 해야지.
과연 한 글자를 고치고 나니, 물 오른 봄날의 버들가지와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복사꽃의 정취가 ‘천(千)’과 ‘만(萬)’으로 한정지었을 때보다 더 생생해졌다.
이렇게 한 글자를 지적하여 시의 차원을 현격하게 높여 주는 것을 ‘일자사(一字師)’라고 한다. 청나라 때 원매(袁枚)가 말했다.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하다.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의 맥락도 넌지시 한 글자 질어 주는 스승이 있어. 나가 놀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왔으면 좋겠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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