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칼끝 21. 이택상주(麗澤相注) : 두 개의 연못이 맞닿아 서로 물을 댄다
1812년 다산이 제자 초의를 시켜 그린 「다산도(茶山圖)」와 「백운동도(白雲洞圖)」가 전한다. 다산도를 보면 지금과 달리 아래 위로 연못 두 개가 있다. 월출산 아래 백운동 원림에도 연못이 두 개다. 담양 소쇄원 또한 냇물을 대통으로 이러 두 개의 인공 연못을 파 놓았다. 담양 명옥헌(鳴玉軒)과 대둔사 일지암 역시 어김없이 상하 방지(方池)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상하 두 개의 연못 파기를 호남 원림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지 싶다. 못에는 연꽃과 물고기를 길러 마음을 닦고 눈을 즐겁게 했다. 뜻하지 않은 화재에 대한 대비의 구실은 부차적이다.
두 개의 잇닿은 연못은 『주역』에 그 연원이 있다. 태쾌(兌卦)의 풀이는 이렇다. “두 개의 못이 잇닿은 것이 태(兌)다. 군자가 이것을 보고 붕우와 더불어 강습한다.” 무슨 말인가? 두 연못이 이어져 있으면 서로 물을 대 주어 어느 한쪽만 마르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붕우는 늘 서로 절차탁마하여 상대에게 자극과 각성을 주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한다. 이렇게 이어진 두 개의 못이 이택(麗澤)이다. 이때 이(麗)는 ‘붙어 있다’ 또는 ‘짝’이란 의미다. 고려시대 국학()國學)에 이택관(麗澤館)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이택당(麗澤堂)이니 이택계(麗澤契)니 하는 명칭이 여럿 보인다.
지금 사람들은 귀를 막고 제 말만 한다. 남의 말은 들을 것도 없고 제 주장만 옳다. 토론이 꼭 싸움으로 끝나는 이유다. 그러다 금세 말라 바닥을 드러낸다. 마당의 두 개 연못 곁 초당에서 사제간, 붕우간에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들의 그 봄날을 생각한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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