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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청천벽력(靑天霹靂)

청천벽력(靑天霹靂) - 《『육유』「九月四日鷄未起作」》

푸른 하늘에 벼락이 치다

 

  청천벽력(靑天霹靂)은 생각지도 못한 돌발 사고나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청천’은 ‘청천(晴天)’과 같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의미다.

 

  『육유』「9월 4일 닭이 울기 전에 일어나 짓다(九月四日鷄未起作)」에 나오는 글로,

  방옹병과추(放翁病過秋) - (나) 방옹은 병이 들어 가을을 지내다가

  홀기작취묵(忽起作醉墨) - 홀연히 일어나 술 취한 먹으로 짓는다

  정여구칩용(正如久蟄龍) - 마침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용과 같이

  청천비벽력(靑天飛霹靂) - 푸른 하늘에 벼락이 휘몰아친다

  수운타괴기(雖云墮怪奇) - 비록 괴기하게 떨어졌다고 말하지만

  요승상민묵(要勝常憫黙) - 한참 동안 참고 묵묵히 있으려고 한다

  일조차옹사(一朝此翁死) - 하루아침에 이 늙은이가 죽으면

  천금구불득(千金求不得) - 천금을 가져와도 얻지 못하리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가을이 끝날 무렵인 음력 9월이다.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병마에 허덕이던 육유는 어느 날 병을 이겨 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치 술에 취하듯 흥겹게 붓을 놀려 보지만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 몸처럼 시는 전반적으로 음습한 분위기이다. 삶의 의미를 손아귀에 움켜쥐려는 강한 의지도 지금 상황에서는 무기력해 보인다.

 

  이 시에서 ‘용(龍)’은 자신을 비유하는데, 용은 하늘로 올라갈 때 벼락과도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나 병마를 겪은 그가 어떻게 해 볼 도리는 거의 없다. 자신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떨어보는 너스레도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몸이 힘겨울지라도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와 현실에 짓눌려 움츠린 모습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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