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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마음의 표정 8. 욕로화장

마음의 표정 8. 욕로환장(欲露還藏) :보여줄 듯 감출 때 깊은 정이 드러난다

 

  강가를 왕래하는 저 사람들은

  농어 맛 좋은 것만 사랑하누나.

  그대여 일엽편주 가만히 보게

  정작은 풍파속을 출몰한다네.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이 쓴 「강가의 어부(江上漁者)」 란 작품이다.


  현실에 역경이 있듯 강호에는 풍파가 있다. 강가엔 농어회의 향기로운 맛과 푸근한 인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는 거기대로 찬 현실이 기다린다. 녹록치 않다. 힘들고 어려워도 정면 돌파해야지, 자꾸 딴 데를 기웃거려선 못쓴다. 실컷 먹고 배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과 가난해도 즐거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은 기실 강호가 아닌 내 마음속에 있다.


  거나하게 취해 활짝 핀 곳을 꺾는 것이 잠깐은 통쾌하겠지만, 아침에 깨고 보면 영 후회스럽다. 다 털어 끝장을 봐서 후련한 법이 없다. 갈 데까지 가면 공연히 볼썽사나운 꼴만 보게 된다.


 말 한마디에 울컥해서 오랜 친구를 칼로 찌르고, 한때의 분을 못 이겨 할머니와 소녀가 지하철에서 맞장을 뜨는 세상이다. 말에 독이 들고, 혀가 칼이 된다. 간직해 남겨 준 여백을 잊고 산 지가 오래되었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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